
오늘도 집에 들어오니 두 방에 문은 다 열려있고 마루에 켜진 형광등이 집사람과 세 아들의 자는 모습을 어슴푸레 비추고 있다.
셋째 성윤이는 오늘도 나랑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엄마 옆에서 이불을 다 걷어차고 곤히 자고 있다.
“동생이 태어나면 성윤이는 형들이랑 자야하니 오늘부터는 형들이랑 자자!”는 내 제안을 흔쾌히 인정했던 성윤이가 아직은 적응이 잘 안되나 보다
시계는 벌써 2시를 향하고 있었지만 배가 출출하다. 오늘도 6시 피자 한 조각으로 저녁을 때운 탓에 간단히 먹을 게 없나 냉장고를 뒤진다.
요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에 먼저 손이 간다. 토마토 2개를 뚝딱하고도 시장기가 가시지 않는다. 음.. 또다시 냉장고를 뒤진다. 냉동실에 아이스크림 통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냥 뚜껑 열고 숟가락 들고 먹기만 하면 되는 요기꺼리로 아이스크림이 간택되었다.
어제도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 있었는데 오늘도 아이스크림이 냉동실에 한 구석을 지키고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우리 집에서 아이스크림이 숙박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어제도 오늘도 아이스크림이 숙박을 하고 있다니..
집사람의 이 닦고 자라는 잔소리가 우리 아이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나 보다.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또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컴퓨터 앞으로 가 자세를 잡고 아이스크림 뚜껑을 연다. 헉 이런 왠지 가볍다 했더니 아이스크림이 하나도 없다. 조금 남아있어서 가볍꺼니 생각했는데, 왜 빈 아이스크림 통을 냉동실에 넣어놓았을까? 고민할 틈도 없이 눈에 확 들어오는 그 무엇이 있었다.
“아빠 메롱”
아이스크림 뚜껑 속에 붙어 있는 쪽지에 적인 글씨 네 자 “아빠 메롱”
첫째 성민이 작품인 것 같다.
어제 저녁도 오늘처럼 1시를 넘겨 들어와 건너뛴 저녁을 대신할 것을 찾아 냉장고를 뒤지다가 아이스크림이 반통도 넘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허 신기하네! 아이스크림을 다 남겨 놓고”라 생각하며 아이스크림을 깨끗이 먹어치웠던 어제 일이 머리를 스쳐간다.
그러면 그렇지 얼굴 보기 힘든 아빠를 생각해서 남겨 놓았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며 맛있게 먹어치워 버린 아이스크림이 문제였다.
아이스크림을 눈앞에 두고, 세 형제가 내일 먹자고 합의 보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렵게 합의를 보고 내일 학교 갔다가 와서 맛있게 먹기 위해 어렵게 남겨 둔 아이스크림을 아빠가 모두 먹어 치웠으니 아빠의 이런 행동에 어떻게든 항의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세 형제가 쪽지에 “아빠 메롱”을 쓰면서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아이스크림 통 뚜껑을 깨끗이 닦고 쪽지를 투명테이프로 단단히 부치며 이 쪽지를 보고 황당해할 아빠 모습을 그리며 얼마나 통쾌해 했을까?
보지는 않았지만 눈에 선하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회탈이 되어 형들의 작전 수행을 보며 즐거워했을 성윤이, 아빠가 이렇게 할 것이다 예상하며 상황 재현을 해보이며 깔깔 거렸을 성현이, 쪽지를 쓰며 입이 귀에 걸렸을 성민이 모두가 눈에 선하다.
아빠가 새벽에 나가서 늘 자기들이 잘 때만 들어와 아빠 얼굴 본 지가 까마득한 것도 화나는데, 우리 아이스크림까지 먹어치우다니.. 하면서 이 장난을 준비했을 꺼다.
감히 아빠한테 이런 장난을 치다니! 하며 화를 낼 수도 없다. 도리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빠 얼굴도 보여주지 못했던 보름이 넘는 시간 때문에 차라리 이번 메롱사건이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이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아들들아 아빠가 미안하다. 내일만 지나면 엄마가 일찍 주무시는 날 아빠가 들어오면서 아이스크림 두 통 사가지고 와서 엄마 몰래 우리 넷이서 아이스크림 시 컷 먹자!
2006년 5월 31일 새벽 아빠가...
가족에가 다정 다감한 의장님 반갑습니다. 잘지내죠.
다복한 가정을 볼때 마다 늘 부럽습니다. 용기있는 자만이 모든 것을 쟁취한다는데
용기가 없어 부러워 하기만 하는 군요. 모두 건강하게 잘 키우세요... 좋은 하루 되시고요. 그리고 언니 아이들 넷 키우느라 바쁜 것 알지만 글 좀 남겨 주세요. 잘 지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