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조직


우리는 흔히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투쟁의 최후의 수단이다. 투쟁을 하지 않고 우리의 목표를 관철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전술이다. 그런데 11월 30일 위원장님의 기자회견과 12월 4일 노사정 합의 이후 이와 비슷한 논쟁이 게시판에서 있었습니다.

이 논쟁이 현실을 직시해야 할 문제는 현재 한국노총은 투쟁하지 않고도 목표를 쟁취할 수도, 앞으로 당분간 투쟁을 할 수 없는 조직이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11월 30일 기자회견 후 개최된 지역지부의장단 회의에서 한 지역지부 의장의 “우리 지역지부는 앞으로 한 명의 조직동원도 불가능한 조직이 되어버렸다.” 고 울부짖었던 목소리가 지금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논쟁은 전략, 명분, 목표를 상실한 조직이 투쟁할 수 있는가? 지도부의 신뢰가 붕괴된 조직이 투쟁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당장은 힘이 약해서 물러설 수도 찌그러들 수도 있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포기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정당한 투쟁을 비하 할 때 사용되던 논리를 스스로 사용하셨습니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조합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무리한 투쟁을 하는 조직”이 노동조합인 것처럼 스스로 인정하셨습니다. 87년 이전 호헌에 찬성하라면 할 수 밖에 없었던 조직에서 당당히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조직으로 전환을 가능케 했던,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진정한 노사관계를 처음 경험해 보게 해 준 선배들의 피어린 노력을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사건으로 비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만들어낸 12월 4일 합의와 12월 7일 담화문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 위기와 세종시 문제로 우리는 투쟁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셨는데, 이유가 될 수 없는 명분이었습니다. 미국발 경제위기 시작 시점이라면 모를까? 11월 30일은 아니었습니다. 정부가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하자고 외치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총파업 투쟁 계획을 수립하던 시기가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시기 이었습니다. 세종시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고 갈등의 정도로 치자면 지난해 미국소 수입반대가 더 커다란 갈등의 시기였는데, 장석춘 위원장님도 직접 촛불 시위 현장에 함께 하시지 않았습니까?


위원장님의 그 주장들이 일부 보수세력에게 환영을 받았지만, 앞으로 우리들의 어떠한 투쟁도 정당성을 상실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조합원들에게는 노동자의 목숨과도 같은 명분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조직의 내부 동력을 모두 삼켜버렸습니다.


꿈에도 그리는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조직이 되기 위해 우리는 늘 투쟁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투쟁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을 때 우리는 투쟁하지 않고도 우리의 목표를 쟁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일상활동을 강조한 것 아닙니까?


분명 투쟁력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조직의 격을 높이는 활동도 분명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통해 조직의 격을 높이고 우군들을 만들어 갑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국민적 신뢰를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진정 조직의 힘을 키우는 것이고 투쟁하지 않고도 목표를 쟁취할 수 있는 조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정치활동의 강화도 이런 맥락에서 접근하고 현재 정책연대는 파기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정책연대는 서로 서로 이용하는 관계이지 절대 뜻을 같이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원장님께서도 신년사를 통해서 밝히셨듯이 “노동시장 유연화, 노사관계 선진화, 공공부문 선진화 등 출범 이후 일관되게 친기업-반노동적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진해 온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과 노동정책기조는 새해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정책연대를 깨고 노동조합의 생존과 노동기본권의 수호를 위해 우리가 투쟁해야 하는 것입니다.


노동조합 설립 후 모든 비조합원을 비정규직, 연봉제로 전환시켜 놓고 고용불안을 무기로 노동조합 가입을 가로막고 있는 사용자에 맞서 조합원 한명이라도 늘이기 위해 밤낮없이 비조합원들을 만나고, 비조합원 한명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조합원 전체 임금인상을 포기하며 싸우고 있는 작은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지금이라도 투쟁해야 하는 것입니다.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조직으로 가기 위해서라도 지금 투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투쟁하지 못하는 것은 조합원을 믿지 못하는 것이고 조합원을 믿지 못하는 조직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0.1.5


부천 김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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